
저자: 우타노 쇼고(歌野晶午)
번역: 김성기
출판: 한스미디어
출간: 2019년 3월 29일 (리커버 개정판)
제목이 참 아름답다.
벚꽃이 피는 계절도 아니고, 지는 계절에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말에는 처음부터 조금의 쓸쓸함이 묻어 있다.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목만 접했다면 추리소설보다는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구판 표지도 그런 인상과 잘 어울린다. 꽃잎과 나비, 여러 색이 어우러진 그림은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아련하고, 제목을 읽고 떠올리게 되는 분위기를 그대로 품고 있다.
개정 전 표지도 충분히 아름다워서 좋았다. 책 표지가 바뀌면 새것이 더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이전 표지에 익숙해진 탓인지 굳이 바꾸지 않아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책은 조금 다른 경우였다. 다 읽고 나니 개정 후 표지가 더 좋아졌다.

개정판은 인물과 풍경이 훨씬 구체적으로 들어온다. 구판이 제목에서 느껴지는 정서를 그림으로 펼쳐 놓은 것 같다면, 개정판은 어떤 이야기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물론 책을 읽기 전에도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읽고 나서는 그림을 보는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왜 더 좋아졌는지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설명을 잘못하면 표지 이야기를 하다가 책의 재미까지 건드리게 될 것 같아서다. 다만 읽기 전에는 예쁜 표지였고, 읽고 난 뒤에는 이 책에 어울리는 표지가 되었다고 하면 될 듯하다. 그림은 그대로인데 내가 받아들이는 쪽이 달라졌다.
책의 바깥에 있는 표지를 본문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게 되는 경험은 꽤 좋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것으로 독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덮으며 처음 보았던 그림과 제목으로 한 번 더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우타노 쇼고는 1961년 일본 지바현에서 태어나 1988년 《긴 집의 살인》으로 데뷔한 추리소설가다. 아야츠지 유키토 등과 함께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며, 이 작품으로 2004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본격미스터리대상을 받았다.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의 작가이기도 하다. 복잡한 수상 이력을 모두 나열하지 않더라도,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이름을 마주치게 되는 작가다.
이 책에 대해서도 읽기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반전이 있다는 것.
추리소설에서 반전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조금 애매하다. 읽고 싶게 만드는 좋은 소개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무언가를 기다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가도 이 사람이 수상한가, 이 장면을 기억해야 하나, 지금 읽은 문장에 다른 뜻이 있나 하는 생각이 끼어든다. 작가가 숨겨 둔 것을 찾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동시에, 정작 눈앞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다 읽을 때까지 도대체 무엇이 반전이라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무언가가 어떤 종류인지조차 잘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읽는 내내 답답하거나 지루했던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읽혔고, 문장이나 전개가 과하게 튀어서 흐름을 끊는다는 느낌도 크지 않았다. 반전을 찾아내겠다는 마음과 별개로 이야기는 계속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좋았다.
반전으로 유명한 소설을 읽다 보면 마지막을 위해 나머지 부분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앞부분이 길게 늘어선 준비 과정처럼 보이고, 독자는 언제쯤 본론이 나올까 기다리게 된다. 물론 끝에서 모든 것이 잘 맞물리면 그 과정까지 즐거운 기억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읽고 있는 순간의 재미까지 나중으로 미뤄 두는 방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내게 그런 부담이 적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어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억지로 페이지를 넘긴 것은 아니었다.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뒤까지 읽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에도 정작 내가 기다리던 반전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끝에 이르렀을 때의 감상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럴 수 있겠구나.
놀라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히 예상하지 못했고, 꽤나 기억에 남을 만한 반전이었다. 다만 놀람과 함께 따라온 감정이 황당함이나 거부감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억지보다는, 알고 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쪽에 가까웠다.
반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독자가 알 수 없었던 사실을 마지막에 갑자기 꺼내 놓으면 누구라도 예상하지 못한다. 놀라게 하는 것 자체보다 그 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읽은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지, 그 결말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불편한 부분을 애써 넘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잠깐 놀란 뒤에도 이야기 속에 계속 머물 수 있는지.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내게는 마지막 쪽이었다.
어떤 독자는 다른 감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에서 어디까지를 허용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의 놀라움을 좋아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 역시 언제나 같은 기준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결말을 알고 난 뒤에도 앞서 읽은 시간들이 허무해지지 않았다. 반전 하나를 보여 주기 위해 나머지를 무리하게 끌고 왔다기보다는, 이 이야기가 이런 모습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겠다는 납득이 남았다.
책을 읽기 전부터 반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면, 다 읽고 난 뒤의 감상까지 반전으로만 정리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나 놀랐는지, 예상했는지, 속았는지. 그런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쉽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른 부분도 함께 기억에 남는다. 끝까지 편히 읽혔다는 것,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생각보다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 그리고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니 이전보다 마음에 들었다는 것.
아마 반전의 내용만 전해 들었다면 이런 감상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것과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읽어 가며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줄거리 몇 줄로 전달할 수 있는 놀라움과, 한 권을 읽고 나서 남는 느낌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면 무엇이 대단한 반전인지 설명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읽었고 마지막도 좋았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 무조건 놀랄 것이라고 기대를 과하게 올려 두는 것보다는 그 정도가 적당하겠다. 나처럼 반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끝까지 감을 잡지 못할 수도 있고, 훨씬 먼저 알아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책을 덮은 뒤 표지를 한 번 더 보았으면 좋겠다.
구판은 여전히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 한 권을 골라 책장에 꽂아 둔다면, 나는 개정판 쪽으로 손이 갈 것 같다.
작가 약력 참고: YES24 작가 소개 · WEB本の雑誌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