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스가 시원시원하게 튀어나오는 음악이 듣고 싶을 때 빼놓기 어려운 곡이 있다. 찰스 버소드Charles Berthoud와 지아코모 투라Giacomo Turra의 Slapocalypse.
운전할 때 창문을 열고 크게 틀어 놓으면 그야말로 Driver’s high다. 굳이 어디 멀리 가거나 특별히 좋은 풍경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베이스가 튀기기 시작하면,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것들이 잠깐 뒤로 밀려난다. 달리는 건 차인데 기분은 내가 뛰는 것 같다.
제목부터 슬랩Slap과 아포칼립스Apocalypse를 붙여놓은 듯한 이름이다. 세상이 멸망하는지는 모르겠고, 베이스 줄은 무사한가 싶다.

Charles Berthoud (b)
Giacomo Turra (g)
버소드는 베이스 연주 영상을 찾아보다 보면 한 번쯤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슬랩도 하고 태핑도 하고, 베이스 하나로 멜로디와 반주를 함께 끌고 가기도 한다. 분명 악기는 하나인데 혼자 너무 많은 일을 한다.
본인의 인터뷰에서도 태핑의 매력으로 베이스와 화성, 멜로디를 한 악기에서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이런 연주자를 보고 있으면 베이스가 밑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악기라는 설명은 상당히 억울하게 들릴 법하다. 받쳐주기도 하지만, 마음먹으면 그냥 앞에 나와서 다 해버린다.
Slapocalypse에서 기대하는 재미도 그쪽이다. 무겁게 깔려 있는 저음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탄력 있게 튀어나오는 베이스가 유독 반갑다. 저음인데 답답하지 않고, 묵직한데 둔하지 않다. 소리 하나하나가 바닥을 찍고 곧바로 다시 튀어 오르는 느낌.
평소 듣는 메탈의 두꺼운 소리에 파묻히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식으로 귀가 탁 트이는 음악이 필요하다.

함께 이름을 올린 투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기타리스트로, 펑크Funk와 재즈, R&B의 영향을 받은 연주로 알려졌다. 여기서 펑크는 펑크록의 Punk가 아니라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쪽의 Funk다.
기타와 베이스가 같이 앞에 나오면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느라 피곤해지는 음악도 있다. 잘하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지금 뭘 들으면 되는지 모르겠는 경우. 이 곡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복잡한 설명을 붙이기 전에 먼저 신난다는 점이다. 손이 얼마나 빠른지 세고 앉아 있을 필요 없이, 베이스를 따라가다 보면 이미 어깨가 움직인다.
기교가 많은 음악을 꼭 진지한 표정으로 감상할 이유는 없다. 연주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연주할 사람에게 맡기고, 듣는 사람은 신나면 되는 것 아닐까.
차에서는 그 장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창문을 조금 내리고 볼륨을 올리면 바람 사이로 베이스의 윤곽이 톡톡 살아난다. 아래에서 웅웅거리기만 하는 저음과는 다른, 손에 잡힐 것 같은 탄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시원한 베이스’라는 말을 들으면 떠올리는 감각이 딱 이쪽이다.
한 곡이 2분 남짓이라 길게 분위기를 잡지도 않는다. 조금 더 듣고 싶은데 벌써 끝난다. 다 듣고 나면 다른 곡으로 넘어가기보다 한 번 더 누르게 되는 것도 그래서일 듯하다.
거창하게 올해의 명곡을 고르는 자리까지 갈 필요는 없고,
오늘 베이스가 좀 제대로 튀는 음악을 듣고 싶다 하면 일단 넣어둘 곡.
창문 열기 좋은 날이면 더 좋다.
Track Listing
1. Slapocalypse
덧붙임. 이 협업에는 이후의 이야기가 있다. 2025년 투라를 둘러싼 다른 음악가들의 작품 무단 사용과 크레디트 논란이 불거졌고, 버소드는 기존 협업 영상을 내렸다. 이후 여러 연주자와 함께 Slapocalypse Reborn을 공개했다. 여기 남긴 감상은 2024년 발표된 원곡에 대한 것이다. 곡을 들으며 느꼈던 즐거움과는 별개로,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제대로 남는 일 역시 중요하겠다.
함께 듣기 — Slapocalypse Reborn (2025)
원곡의 공식 협업 영상은 삭제되어, 아래에는 Charles Berthoud가 여러 연주자와 새롭게 녹음한 후속곡의 공식 영상을 첨부한다. 위에서 소개한 2024년 원곡과는 다른 버전이다.
#CharlesBerthoud #GiacomoTurra #Slapocalyp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