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미쓰다 신조
번역: 권영주
출판: 비채
출간: 2010년 8월 6일
추리소설과 괴기소설은 분명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주지만, 읽다 보면 두 장르의 거리가 생각만큼 멀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감각, 평범해 보이는 말이나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긴장감, 그리고 아직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욱 불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그렇다. 한쪽에서는 그 이유를 밝혀내기를 기대하고 다른 쪽에서는 끝내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즐긴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독자가 지나가는 어둠은 제법 비슷하다.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에 속하는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그런 두 장르가 만나는 지점에 놓인 책이다. 처음부터 시리즈의 명성이나 작품의 평가를 충분히 알고 골랐던 것은 아니고, 표지와 제목에 끌려 구입해 읽게 되었다. 잘린 머리도 충분히 불길한데, 그것처럼 불길한 무언가라니.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면서도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할 것인지는 선명한 제목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고를 때는 그 정도의 약속만으로도 손이 가는 편이다.
이야기는 오래된 가문과 기이한 풍습이 남아 있는 산골 마을을 무대로 삼는다. 가문의 계승과 아들의 성장에 얽힌 의식, 대대로 전해지는 두려움,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겹쳐지면서 마을 전체가 조금씩 불길한 장소로 느껴진다. 외부에서 보면 이상한 관습인데도 그 안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라는 점이 특히 꺼림칙하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규칙을 모두가 알고 있으며, 그 규칙에 관해 함부로 질문해서도 안 될 것 같은 공간에는 그 자체로 사람을 긴장시키는 힘이 있다.
물론 그 마을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주 편하지만은 않다. 초반에는 등장인물과 가문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면서 낯선 이름과 풍습까지 함께 받아들여야 하므로,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일단 누가 누구인지 정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이름과 애칭과 부칭이 번갈아 등장하는 러시아 소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선녀다. 적어도 처음의 복잡함을 조금 견디고 나면, 그 설명들이 만들어 놓은 공기 속에서 사건을 읽게 된다.

일본의 요괴 전승에는 밤이 되면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누케쿠비 같은 존재가 있다. 이 책의 설정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사람의 머리가 제자리를 벗어난다는 상상은 그 자체로 묘하게 오래 남는다. 머리는 누군가를 알아보는 데 가장 먼저 살펴보는 부분이며,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그 사람의 의도를 읽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것이 몸에서 분리되는 순간, 익숙한 사람의 일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으로 바뀐다. 잔혹함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불길함이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기이한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의 태도다. 추리소설을 읽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수상한 사건이라도 일단 인간이 벌인 일이라고 가정하게 된다. 누구에게 기회가 있었는지, 무엇을 잘못 보았는지, 어떤 설명이 빠져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쌓이는 이야기와 분위기는 자꾸 다른 가능성을 의식하게 만든다. 논리적으로 해석하려고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논리 바깥을 경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크툴루 세계관 안으로 들어간 이지적인 탐정도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처음에는 주민들의 미신과 증언의 모순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자신이 확보한 정보로 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이곳에 계속 머물러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책이 크툴루 신화를 다룬다는 뜻은 아니다. 이성을 믿고 들어간 사람이 불길한 분위기에 조금씩 휘말리는 감각이 그쪽의 이야기를 연상시켰다는 정도다.
그래서 괴담을 기대하고 읽는 사람과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는 사람의 감상은 제법 다를 것 같다. 전자는 기이한 일이 만들어 내는 공포와 여운에 더 마음이 갈 것이고, 후자는 사건의 구성과 설명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맞물리는지에 더 집중할 것이다. 같은 장면에서도 누군가는 무서워하고 누군가는 단서를 찾느라 바쁠 수 있다. 나는 그 두 가지 태도 사이를 오가게 되는 점이 좋았다. 수상한 것을 보면 이유를 알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완전히 익숙한 것으로 정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던 셈이다.
추리의 즐거움도 충분히 있다. 다만 이 책에 관해 사건의 구조나 인상적인 대목을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어떤 부분을 유심히 보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난 뒤 앞부분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라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처음에는 분위기를 만드는 설명처럼 보였던 것들을 나중에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꺼림칙한 여운이 남는 책을 좋아한다. 읽는 동안 무서웠는지와는 별개로, 책을 덮은 뒤에도 어떤 장면이나 분위기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쪽이 더 기억에 남는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도 그런 편에 속했다. 사건을 따라가는 동안에는 자꾸 설명을 찾으려 했는데, 막상 읽기를 마치고 나니 오래 남은 것은 그 마을에 감돌던 공기였다. 표지와 제목에 끌려 집어 든 책이었고, 다 읽은 뒤에는 그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꺼림칙하게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