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방에서, 이상하게 멈출 수 없는 춤.
화질이 좋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장면을 뜻하지는 않는다. 도쿄 마나카의 ‘Brain Rot’ 뮤직비디오는 그 반대편에서 매력을 발휘한다. 오래된 테이프를 여러 번 돌려본 듯 바랜 색감, 윤곽이 뭉개지는 화면, 어디선가 발견한 캠코더 영상 같은 질감. 풍화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 화면 속에서 캐릭터는 춤을 춘다.
춤도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짧은 동작이 반복될 뿐인데 묘하게 눈을 떼기 어렵다. 대단한 장면이 나올 것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이미 본 움직임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진다. 노래 제목이 ‘Brain Rot’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시작부터 제법 정확한 함정이다.
이 영상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백룸(The Backrooms)이다. 백룸은 현실에서 어긋나 끝없이 이어지는 빈 공간에 떨어진다는 인터넷 괴담에서 출발했다. 누렇게 뜬 벽지와 형광등, 사람 없는 방과 복도. 낯선 괴물이 없어도 익숙해야 할 장소가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안해지는 세계다. 사람이 오가야 할 공간에서 사람만 빠져나간 듯한 ‘리미널 스페이스’의 감각과도 맞닿아 있다.
‘Brain Rot’과 백룸의 연결도 이런 공간과 영상의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뮤직비디오는 밈 아카이브인 Know Your Meme에서도 백룸 관련 영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다만 확인한 자료만으로 특정 백룸 영화나 게임의 공식 주제가라고 할 근거는 없다. 백룸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문법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자연스럽다.
내게 재미있는 것은 그 안에서 춤을 춘다는 점이다. 나가야 할 것 같은 공간인데, 정작 화면 속에서는 춤이 계속된다. 그래서 귀여운 동시에 조금 섬뜩하다. 출구를 찾다가 포기한 것인지, 애초에 나갈 생각이 없는 것인지. 이것은 어디까지나 감상이지만, 끝없이 다음 영상을 넘기면서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풍화된 화질은 그 기분을 더한다. 선명한 화면이었다면 캐릭터와 배경을 구경하고 끝났을지 모른다. 그런데 오래된 캠코더 테이프 같은 질감이 입혀지니, 누군가 남겨 놓은 이상한 기록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된다. 실제 필름이나 테이프로 촬영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크레딧에는 AI 배경 영상 작업이 별도로 표기되어 있다. 새롭게 만든 이미지가 오래된 기억처럼 보인다는 점도 이 영상의 묘한 구석이다.
제목인 ‘brain rot’ 역시 인터넷에서 익숙해진 표현이다. 사소하고 자극적인 온라인 콘텐츠를 너무 오래 소비하면서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상태를 자조적으로 가리킨다. 옥스퍼드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을 만큼 널리 쓰이게 됐다. 문자 그대로 뇌가 썩는다는 진단이라기보다는, “이걸 왜 계속 보고 있지?” 하면서도 손가락은 다음 영상을 넘기는 순간에 가까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곡의 반복과 춤은 제목에 잘 어울린다. 짧게 떼어 놓아도 눈에 들어오고, 다시 재생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으며, 다른 캐릭터가 같은 동작을 해도 통할 것 같다. 밈이 퍼지기 좋은 조건이다. 웃긴 이유를 길게 설명하기 전에 이미 기억에 남는 것. 이런 종류의 매력은 설명보다 반복이 빠르다.
그렇다고 영상만 남는 곡은 아니다. 짧게 되돌아오는 보컬과 리듬이 춤의 움직임에 붙으면서, 화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음악까지 따라오는 느낌을 만든다. 노래를 듣고 춤이 생각나는지, 춤을 보고 노래가 생각나는지 구분이 흐려진다. 이 둘을 한 덩어리로 기억하게 한다는 점이 좋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도쿄 마나카가 곡을 만들고, 노래는 카사네 테토의 Synthesizer V 음성으로 구현했다. 여기서 UTAU 이야기도 이어진다. 테토는 만우절 장난에서 출발해 노래 합성 도구 UTAU를 통해 가상 가수로 자리 잡았고, 이후 Synthesizer V용 음성도 출시된 캐릭터다. 따라서 테토의 역사와 UTAU는 깊이 연결되어 있지만, 이 곡에 사용된 보컬은 크레딧상 ‘重音テトSV’다.
이런 음악 주변에는 사람이 직접 다시 부르는 ‘불러보았다’, 일본어로는 ‘우탓테미타’ 문화도 함께 있다. 흔히 말하는 우타이테의 활동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UTAU가 노래를 합성하는 도구라면, 이쪽은 노래를 자기 목소리로 해석하고 나누는 문화다. 하나의 곡이 합성 보컬에서 사람의 목소리로, 다시 다른 캐릭터와 영상으로 옮겨 다닌다.
하나코 나나의 ‘Brain Rot’ 커버도 함께 넣어 두고 싶다. 영상에는 나나가 보컬과 코러스를 맡은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원곡과 나란히 놓고 들으면 같은 곡이 다른 목소리를 만났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이런 커버까지 이어서 보면 밈을 단순히 잠깐 유행하다 사라지는 것으로만 보기는 아깝다. 누군가는 춤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캐릭터를 바꾸고, 누군가는 직접 노래한다. 짧은 반복이 다른 사람의 취향과 손을 거치며 조금씩 다른 것이 된다. 원본을 찾아 들어가는 입구도 그만큼 많아진다.
‘Brain Rot’에서 오래 남는 것은 결국 그 이상한 조합이다. 비어 있는 공간, 닳아버린 듯한 화면, 그 안에서 계속되는 단순한 춤. 귀여워서 보다가 배경이 신경 쓰이고, 배경을 보다 다시 춤에 시선을 빼앗긴다.
백룸이라면 출구를 찾아야 할 텐데, 이 영상 앞에서는 일단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진다. 제목을 참 잘 지었다.